'수장고收藏庫 > 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향신문] 역사와 현실 (0) | 2022.04.14 |
---|---|
[한겨레]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 (0) | 2022.03.27 |
[경남신문]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0) | 2022.01.27 |
[한겨레] 이동기의 현대사 스틸컷 (0) | 2022.01.27 |
[서울신문]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0) | 2022.01.26 |
[경향신문] 역사와 현실 (0) | 2022.04.14 |
---|---|
[한겨레]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 (0) | 2022.03.27 |
[경남신문]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0) | 2022.01.27 |
[한겨레] 이동기의 현대사 스틸컷 (0) | 2022.01.27 |
[서울신문] 박상현의 테크/미디어/사회 (0) | 2022.01.26 |
얼마전 짝으로부터, "조선시대 평민들은 대궐같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는 양반들 보면서 박탈감 같은 거 안느꼈을까?" 질문 받은 적이 있는데 이 인용문으로 내 답변을 대신하고 싶다.
"먹고 사는 것이 아슬아슬한 사람들은 삶의 목표가 뚜렷하다. 먹을 것과 누워 잘 곳을 구하느라 애면글면하노라면 허무감 같은 것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들의 목표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다. 매 끼니가 하나의 성취이며 배부른 상태로 잠자리에 드는 것은 하나의 승리요 어쩌다 생기는 공돈은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한테 '인생의 의미와 존엄성을 부여하며 삶의 용기를 줄 초개인적 목표'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 입에 풀칠하기 위해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노동하는 사람들은 불평불만도, 꿈도 키우지 못한다. 중국의 대중이 반항적이지 않은 한 가지 이유는 죽자 살자 노력해야 간신히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사투는 '역동적이기는 커녕 정적이다.'"
에릭 호퍼, [맹신자들], 궁리, p. 51.
* 먹고 살기에'만' 매달리게 해야 한다.
[아내가 만든 라따뚜이와 내가 만든 김치볶음밥] (5) | 2022.09.22 |
---|---|
[어휘력 부족과 학력저하] (0) | 2022.04.05 |
명산 대첩의 바윗돌 훼손에 대한 조식의 일갈 (0) | 2022.02.09 |
교훈 없는 학교 (0) | 2022.02.06 |
[올해의 소비 혹은 학술적 대화의 일상성] (0) | 2021.12.30 |
북클럽 자본 고병권 인터뷰 (0) | 2022.10.20 |
---|---|
연기법에 대한 과학적 해명 (0) | 2022.04.11 |
수행공동체의 원칙과 외모 컴플렉스 문제 (0) | 2022.01.29 |
108배를 해야 하는 이유 (0) | 2022.01.20 |
인연이란 무엇인가? (0) | 2022.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