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교훈 없는 학교

걷는생각 2022. 2. 6. 10:46

[숨] 원주여고 학생들을 응원하며 - 경향신문 (khan.co.kr)

 

[숨] 원주여고 학생들을 응원하며

얼마 전 원주여고의 신문 동아리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교훈을 개정하고픈데 동문들의 반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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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교훈을 시대에 맞게 바꾸어 나갈 것"을 주문하고 그런 실천에 나서려는 학생들을 응원한다. 그런데 나는 교훈을 바꾸는 것보다 교훈이랄 것이 없는 교육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더 근본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반쯤 웃자고 하는 얘기인데, 사실 이 근본적 변화는 가열차게 진행중이어서, 자기 학교 교훈을 마음에 두고 다니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 요즘엔 만드는 사람들도 구성원들이 그것을 기억해주지 않기를 온 마음으로 바라는지, 음가 외에는 별 뜻도 없는 세상의 좋은 말들을 모아 놓은 문구를 교훈으로 만든다. 각 잡고 외워보려고 해도 잘 안되는 말들이다. 이를테면 칼럼에 인용된, “자유롭게 꿈꾸고 자주적으로 배우며 창의적으로 미래를 가꾸자” 같은 부류. 나 같으면 세 글자로 요약하겠다. "잘살자"

"웅혼한 건학 이념을 바탕으로 교직원과 학생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이념의 실현을 위해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라는 곳이 있다고 치자(나는 어떤 유명 사립고등학교 하나를 염두에 두고 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이보다 더할 수 없는 교육 공동체의 이상으로 보일지 모르나 내게는 다소 섬뜩하다. 그 건학 이념에 심드렁한 사람들은 거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또 '건학 이념'의 복무자들은 그 '낙오자'들을 어떻게 다루려고 하는 거지? 애초부터 그런 사람들은 안받으면 된다고? 들어올 때 했던 생각을 나갈때까지 그대로 갖고 있을 거라면 학교는 왜 다니는 건데? 이처럼, 敎訓을 둔다는 별 것 아닌 실천 밑바탕에서 이렇게 단일한 목표 혹은 이념으로 인간을 개조해낼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 신념을 볼 수 있다.

나는 교육 공동체는 명확한 목표와 이념아래 설계되기 보다 도대체 뭘하려는지 알 수 없는 느슨한 조직으로 지속되는 편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춤추고 노래하는 '날라리'부터 하루종일 책만보는 '범생이'들, 염세주의적 가치에 찌든 교사부터 세상 오지랖 다 부리는 성실맨 교사들이 모두 이 조직에서 자신의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느낄 때, 그 '공간'에서 비록 전체로부터의 인정과 지지를 얻을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얻어 배우고 교류할 수 있는 올망졸망한 커뮤니티를 자발적으로 조직할 수 있을 때, 인간은 대체할 수 없는 한 인격체로 성장해나가는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학교장이면 정문 앞에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아무말도 아닌 '교훈'을 써두고 싶다(그리고 업무시간에 골프치러 창고 갈거다^^ 다들 아시면서)

"하고 싶은거 하고 살기, 그런데 뭐가 되었든 끝까지 해보기"

*물론 현실의 교육공동체는 내 꿈과 정반대로 되어간다. 얘기해본 초임 교사들 또한 어디서 단체 합숙을 3년간 받고 선생님이 된건가 싶을 정도로 세계관이 대동소이하다(어떤 시험이든 그 정도 기간 매여 있으면 사람이 시험을 보는게 아니라 시험이 사람을 규정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홉 번 본사람의 경우는 어떠할지는... 묻지 말자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