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은 경전을 지어 후세 사람들을 가르치니, 장차 경전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그 글을 외우고 그 뜻을 생각하여 사리의 당연함을 알게하고 도의의 전체를 보게하고 몸소 힘껏 행하여 성현의 경지에 들어가게 하였다. 그 말은 비록 간략하지만, 감춰지고 드러난 것과 크고 작은 천하의 일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도를 구하여 덕으로 들어가려하는 자는 이를 버려두고서는 그 마음을 쓸 곳이 없게 된다. 그러나 성인과의 거리가 이미 멀어 그 가르침이 전해지지 않아 상수와 명물, 훈고와 범례에 관해 능숙한 유자들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는데, 하물며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내달려 읽어가니 어찌 그 큰 뜻과 요점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하남 정씨 형제가 사람을 가르칠 때에 반드시 먼저 [대학] , [논어], [중용], [맹자]에 힘을 쓰고 난 뒤에 육경으로 넘어가도록 했다. 무릇 그 난이, 원근, 대소의 차례는 참으로 이와 같아야 혼란스럽지 않게 된다. 따라서 네 가지 고경([역경], [시경], [서경], [춘추]를 말함)을 판각하고 다시 사서를 간행하여 앞뒤로 삼는다. 또 옛날에 들었던 것을 고증하고 이를 음훈으로 만들어 편하게 볼 수 있다록 했다. 또 이것에 대해 정자께서 언급한 것을 모두 모아 그 뒤에 덧붙여 독법을 제시하여 학자들이 볼 수 있게 하였다. 나는 일찍이 [중용]은 비록 [맹자] 7편이 나오게 된 곳이지만, 독자가 먼저 [맹자]를 읽지 않고 갑자기 [중용]을 읽게 되면 또한 도에 들어가는 차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에다 함께 기록해둔다. 소희 개원(1190) 섣달 경인일에 신안 주희가 임장의 군재에서 씀.
천하에는 많은 불공평한 일들이 있다. 만일 남자가 죽어서 그 처가 재가한다면 도가 절도를 잃었다느니, 이름에 먹칠을 했다느니, 몸을 더럽혔다느니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비방한다. 그런데 남자가 처를 잃으면, 다른 여자를 들여서 "거문고 현을 다시 잇는다"는 고사 따위를 읊으며 다시 장가를 가고, 첩을 두고 여종을 사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벌인다. 죽은 이는 남자의 머릿 속에서 떠나 더이상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누구도 그를 변덕스럽고 부정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며, 그에 대해 험담도 하지 않는다. 살아 생전에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외간 남자와 조금이라도 교감을 나누면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이 생긴 것처럼 세상사람들은 부끄러워 수군거린다. 그런데 남자는 처자를 버리고 여색을 탐하면서 기생과 돈주고 자는 일을 무소불위로 행한다. 누군가는 그의 잘못에 대해 말할지 모르나, 남자에게는 큰 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들은 더욱더 가련해지고, 남자들은 더욱더 방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