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까지 공부가 지지부진 했는냐고 스스로에게 자문한다면, 글쓰기를 전제로 하지 않는 읽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사고의 엑기스는 글로 추출되는데, 읽고 쓰지 않는다는 것은 재료를 잔뜩 삶아놓고 마지막에 쥐어짜내지 않는 것과 같다. 당연히 읽어도 남는 것은 없고, 불성실하게 읽게 되기 쉽다. 어학도 마찬가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읽고 말해보는 것을 넘어서, 모르는 영역("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아는 것이다"-논어)을 적극적으로 서술하고 데이터베이스화 시켜놓았어야 했다. 읽는 것에만 한정한다면, 가장 강밀도 있는 공부방법은 번역이다. 한 문장이라도 옮겨보게 되면 숱한 어법적/언어적 곤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읽고 지나가면 절대 알 수 없는 차원의 곤란일 것이다.
그리고 '쓰기'에 관한 앞선 문제제기와 관련해서, '데드라인' 없이 공부해오는게 습관이 되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하루 이틀씩 늦추는 것은 예사고, 생각했던 제출시기를 바꾸는 것을 너무 자주했다. 그런데, 인간은 절박해지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데드라인'은 글쓴이를 힘들게 만들지만, 강력한 외부적 강제로 인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을 겪을 때, 인간은 더할나위 없는 행복과 만족감을 맛본다. 물론, 예전의 나처럼 데드라인 무시하려면 하잘 것 없는 얘기일 뿐이다.
결론 '쓰기' 위해 읽자. 그리고 데드라인을 만들어서 지키자. 이걸 합쳐보자. 글쓰기의 데드라인을 정하고, 어기지 못하게 만들고, 이를 지키기 위해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