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익명'이라는 이름의 인격

걷는생각 2022. 10. 21. 11:23

학교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매년 요맘때에는 교원평가가 진행된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반 쯤은 우스개소리로 "이번주에는 학생님들 심사를 거스르는 언행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곤 한다. 초등학교에는 그런 경우가 드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중고등학교쯤 되면 막나가는 식의 응답도 없지 않아서(ex. "선생님이 나가 뒤지셨으면 좋겠어요") 안 볼 수도 있지만 신경을 아예 안 쓸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프로세스 전체에서 가장 동의하기 하기 어려운 것은 '익명'을 기반으로 한 응답은 개인의 가장 솔직한 의견을 반영한다고 보는 전제다. 철학적이라고 해야 할까 인식론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전제는 인간에 대한 몰이해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익명'의 응답이 가장 내밀할 수 있을지언정, 솔직함과는 큰 상관이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개인의 내면에 어떤 사안에 대한 '솔직함'의 코어에 해당하는 무언가가 있고 다양한 사회적인 역할은 그것을 요리조리 가리는 역할을 한다는 관념이 이러한 평가 방식을 유지하게 하는 전제의 구체적인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면 대학원생, 큰아들, 남편, 직원 등의 사회적 지위가 그에 따른 특수한 역할을 강제하는 측면이 있는 것처럼, '익명'이라는 탈-사회적 지위 또한 그 나름의 특수한 역할을 개인에게 부과할 뿐 무채색의 원초적 인격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인격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매순간 가면을 갈아끼우면서 그것이 자신의 안면인 척 살아가는 인간. 그 뿐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익명'의 가면을 쓰라는 요구는 (이제까지 불가능했던) 반사회적인 입장을 취해보기를 강제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어딜가나 익명게시판이 커뮤니티의 하수구 기능을 담당하게 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자기에 대한 서술도 아니고 인간이 제일 광분하는 주제인 '타인에 대한 평가'에 '익명'의 가면을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저 내키는대로 물어뜯어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익명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에게 따뜻한 응원의 말을 남기는 학생이 유달리 착한 학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선생님 나가뒤지라고 하는 학생 또한 유달리 싸이코패쓰 학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익명이라는 가면 놀이에서 광범위하게 허용되는 역할행동을 했을 뿐이다. 교육현장에서 익명으로 진행되는 가지각색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주관식이든 객관식이든.
대안은 뭐냐고? 서로 면전에서 까놓고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면 그리 큰 의미부여 할 필요도 없고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물론 서로간의 예의와 겸양은 필수다) 교육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내놓는 얘기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면서 노발대발하는 귀 막힌 사람들은 점차 퇴장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며, 위계와 문화적 관습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하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런 사람 괴롭히는데 동참은 하지 않는게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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