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批評/먹은 거

[Pizza Never Sleep] "무분별한 시대의 음식"- 샤로수길 -

걷는생각 2020. 11. 20. 23:27

 

 

메인 메뉴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들뢰즈는 어딘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져다가 이렇게 비틀어본다.

 

  "언젠가 세상은 인스타가 될 것이다."

 

  사실 말을 맞추기 위해서 저렇게 쓴 것일 뿐, 이미 세상은 인스타가 되었다. 특히 이른바 맛집 세상은 인스타의 횡행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가득하다. 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는 '무분별'이다. 보여지는 것을 위해 다른 모든 요소를 아랑곳하지 않는 무분별. 20-30대 젊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맛집이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은 역설적이게도 '맛'이 아니다. 나의 행복하고 풍요로운 순간을 친구들에게 뽐낼 수 있는 '비주얼', 그것만이 필요하다('분위기 맛집'이라는 공감각적 표현은 이 사태를 적절하게 요약하기에 충분한 표현이다) 그리고 세상의 인스타 맛집들은 거기에 응답했고, 위와 같은 피자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불고기 피자와 포테이토 피자를 시키고 물건을 보는 순간 기겁을 했다. 불고기와 포테이토 모두 건드리자 마자 후두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불고기와 포테이토는 반찬으로 먹으라는 뜻일까. 그럴 수 밖에 없어서 열심히 포크로 불고기와 감자를 '걷어올렸다'. 치즈의 개입을 받지 못한 토핑은 당연히 건조했고, 연신 콜라를 들이켜서야 간신히 먹을 수 있었다. 토핑을 제외하고 본다면 못 만든 피자라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요소들 간의 '분별'이다.

 

  피자의 경우는 빵이라는 기본적인 정체성 하에 풍부한 치즈를 곁들여 감칠맛을 유도하는 음식이라는 본질(이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피자를 먹거나 만들지 않으면 될 일이다)을 저해하지 않는 가운데 다른 요소들이 다채로움을 구현하는 것이 그 '분별'일 것이다. 특이한 피자를 만들어 보겠다고 토핑을 산처럼 쌓는 것은 '무분별'이다. 그래서 피자집을 고르는 나만의 원칙/노하우랄게 하나 있는데 마르게리따 피자를 팔지 않는 피자집에는 가지 않는 것이다. 도우에 토마토 소스를 바르고 치즈를 뿌려 굽는다. 향신료는 바질하나. 이 날것의 피자를 자신있게 내놓을 수 없는 집은 피자에 마땅한 '분별'을 하고 있지 못하는 집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