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안고 살았던 사람이에요, 쇼팽은"
no.13을 배경으로 한 [녹턴 전집(DG)] 소개 영상에서, 백건우 선생님은 쇼팽이라는 음악가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했다. 나는 이 앨범을 통해 처음 클래식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초짜 리스너였고, 그나마도 이 앨범을 그리 많이 듣지 못했던 때 였지만, 백건우 선생님의 이 설명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초짜 리스너에게도 이 아름다운 녹턴의 선율은 동시에 참 슬프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녹턴이 원래 그런 음악인가 싶어서 다른 연주자의 앨범을 들으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 백건우 선생님의 녹턴은 유달리 '슬프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슬퍼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그런 슬픔이라기보다는, 너의 슬픔이 무엇인지 이해하겠다는 그런 슬픔이다. 그래서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고, 이해받고 싶을 때 찾아 듣는다.
사실 나에게는 이번 남한산성아트홀 공연이 두 번째 공연이다. 2019년 겨울, 크리스마스 즈음의 연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술의 전당에서 같은 '백건우의 야상곡' 리사이틀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것은 리사이틀의 타이틀 뿐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연주자도, 그 연주를 듣는 나도 2년 전과는 달라져 있을테니 말이다. 나는 2년전에 이 리사이틀을 같이 들었던 사람과 결혼을 약속했고, 또 그 때보다는 훨씬 더 이 녹턴에 익숙해져있다. 백건우 선생님에게는 2년 동안 어떤 삶들이 있었을까. 나는 이번 공연을 보자마자 바로 티켓을 예매하면서 이 익숙한 음악이 어떻게 다르게 들릴지 너무 궁금했다.
백건우 선생님은 어떤 인터뷰에서 "그 일이 있고 난 후, 내 피아노 소리도 변했다"고 술회한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그 일은 최근의 소란을 통해 공개적으로 알려졌다. 공연의 전후에, 나는 곧 부부가 될 동행과 그 일에 대해 얘기했다.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 슬픔이라고 우리 둘 다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서 내가 사라지는 일은, 정말 그 일 만큼은 겪고 싶지 않은 삶의 마지막이라고. 변한 피아노 소리를 찾아 들으려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걸 찾으려고 한다고 들릴 만한 귀도 아니겠지만, 그걸 귀로 들어야 하는 종류의 변화인지도 모르겠지만, 2년전과는 결이 다른 슬픔을 들었고 함께 다시 올 수 있음에 감사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리사이틀의 마지막 곡은 no.13이었다. 쇼팽은 슬픔을 안고 산 사람이라고 설명할 때 나오던 그 곡. 나또한 다시 듣고 싶어서 기대하던 곡이었는데 마지막 곡이었다. 초반부를 지나 음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말미에 이르자 거의 기절할 듯한 에너지를 느꼈다. 앨범에서는 듣지 못한 소리도 들을 수 있었는데, 선생님이 온 몸에 힘을 실어 건반을 짚어나가면서 내는 발구름 소리였다. 아직도 귀에서는 그 처절하다 싶을 정도로 발구름 소리가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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